Page 79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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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다는 것은 연緣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연緣의 도움을 받
을 필요가 없으므로 연緣의 흩어짐도 없다. 연緣의 흩어짐이 없으므로 자
성을 가진 존재자는 그 스스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본질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존재자를 어디에
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체가 무자성無自性이다. 생명체나 생명종이 나타
났다가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생명세계에서 무자성無自性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무자성無自性의 무상無常을 과학에서는 진화라고 한다. 생명
세계가 그대로 연기緣起다.
『능엄경』에서는 “모든 것(오음五陰, 육입六入,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이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별리別離하면 허망하게 멸한
다.”고 하셨다. 의상 스님은 “참된 성품은 아주 깊고 지극히 미묘하니, 자
성自性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연緣을 따르지
않는 자성自性의 세계라면 깊고 미묘한 무엇이 어디 있겠는가. 『능엄경』에
서는 “환망幻妄을 상相이라 하거니와, 그 성性은 참으로 묘각妙覺의 밝은
본체”라고 하셨다. 참된 성품을 이르심이다.
인도 산치 제1탑 서문의 뒷면. 난쟁이 역사力士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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