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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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


             득도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장부의 호연한 기품이 그대로 드러
           나 있다. 즉, 담대하고도 조용하게 출가 심경을 밝히는 이 ‘출가시’에는

           장차 대선사가 될 스님의 놀라운 각성과 감성이 담겨 있다. 이런 탕탕 무
           애한 기상이 있었기에 한 시대의 선사가 됐던 것이다. 사실, 현실로부터

           의 초연함은 선승들의 중요한 수행실천의 덕목으로, 이것은 걸림이 없는
           탈속한 자유를 갈망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하늘을 덮을 정도의 큰일

           들도 ‘붉은 화로 속의 한 점 눈송이[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고, 바다를 덮는
           기틀도 햇볕에 사라지는 한 방울 이슬에 불과하다. 하여 이영주는 일장춘

           몽의 덧없는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죽어갈 바에야 만고에 변하지 않는 진
           리를 찾아 초연히 출가의 길로 나선 것이다.

             ‘불성’이 마음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며 찾는 것은 수행자의 가
           장 중요한 본분사이다. 때문에 수행자는 마음 안에 있는 불성을 찾아 끊

           임없는 운수행각의 길에 오른다. 1936년 봄 해인사 백련암에서 동산 스
           님을 은사로 수계득도하고, 같은 해 운봉 화상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한

           성철 스님은 눈 밝은 선지식을 참문하며 참선 수행에 정진했다. 범어사
           금어선원, 금강산 마하연 등 남북의 제방선원에서 언어가 끊어지고 생각

           이 끊어진, 본래부터 밝고 신령하여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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