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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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고 모양 지을 수 없는 ‘한 물건’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치
열하게 정진하였다. 스님은 29세 때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마침내 칠통漆
桶을 타파하고 무심을 증득하여 선기禪機 넘치는 ‘오도송’을 읊었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黃河西流崑崙頂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내리도다. 日月無光大地沈.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은 옛 대로 흰구름 속에 있네. 靑山依舊白雲中.
선문을 참구하여 조사관을 뚫은 경지를 선명하게 묘출하고 있다. 향
곡 스님은 이 ‘오도송’을 칭찬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중국의
황하는 동쪽으로 흐르지만, 우리나라 강은 대개 서쪽으로 흐른다. 우리
의 서해가 중국에서는 동해이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른
다.”는 것은 시공의 흐름을 거슬러 흐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래서 거기에 이르니, 거기에는 해와 달이 있기 이전이라 이미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꺼지고” 없다는 것이다.
한편,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대지가 꺼져 허공계가 됐다는 것은 ‘백척간
두 진일보’의 경지이다. 그 경지에서 보면 태허太虛와 진공眞空이 따로 있
는 것이 아니다. 우주가 있기 이전이고 태고 이전이다. 일체가 있기 이전
이라서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텅 빈 태허 진공이다. 분별과 차별을 뛰
어넘은 무심의 경지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문득 한 번 웃
고 돌아서니 도리어 청산은 예대로 구름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자연과 깨달음의 세계가 둘이 아닌 스님의 무
심합도無心合道의 선적 사유가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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