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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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중심으로 구도와 깨달음, 이를 통한 중생교화 등에 몰두하였다.
산중에 앉아서도 세상을 널리 비춘 스님은 1993년 11월4일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세수 82세, 법랍 58세로 상좌들에게 “참선 잘 하라!”는 당부
를 하며 다음의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넘는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生平欺誑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보편적으로 선사들은 세속의 길을 버리고 올곧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
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즉, 마지막까지 자
유자재한 열반모습을 통해 중생들에게 생사가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 주
고자 한다. 나고 죽음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스러워야 자신의 죽음도 그렇
게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자신을
다그쳐 역설의 자화상 만들어냈다.
가령, 원오극근은 아무 일 해놓은 것 없다 했고, 부용도개는 지옥과 천
당을 겁내지 않는다 했지만, 성철 스님은 평생 살아 온 삶을 점검해 보니
남녀 무리를 속였고, 또한 그 죄업이 수미산을 넘는다고 했다. 그토록 초
탈하고 정법에 따른 수행을 강조했던 스님이 사람들을 속였다 함은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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