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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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결사를 추진했다. 1955년 해인사 주지
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철망을 두르
고 10여 년 동구불출을 마치고 1965년 김용사에서 최초 대중법문을 하
였다. 그리고 1967년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취임 후 18년 동안 해인총림
의 방장으로 퇴설당과 백련암에 머무르며 ‘백일법문’을 토하며 서릿발 같
은 선풍禪風을 드날렸다. 특히 1981년 1월20일,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
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석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다”는 법어를 내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텅 비고 고요한 선심의 현상을 잘 담아낸 법어로, 산중에 물러나 있으
면서 세상에 가장 깊숙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교의 면목은 나아
가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것이었으니 제자리를 지켜 현실과 불교계를
깨웠던 것이다. 스님은 자연의 모든 현상을 어떤 분별이나 걸림 없이 무
심히 있는 그대로 보면, 조금도 흠결 없는 우주의 신령스런 깨우침이 널
리 비추니[원각보조圓覺普照], 고요함[적寂]과 멸함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보고 들림은 모두가 관음이고 묘음으로 극락이 따로 없다는 영구불변의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곧 눈으로 보는 만물이나 귀로 듣는 소리 모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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