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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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새로운 불교학적 방법론은 1885년 난조가 도쿄대학의 범어학 강사
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 불교계에 이식移植된다.
하지만 난조의 역할은 국내의 일본불교계에 한정되지 않는 보다 더 큰
국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난조가 유학 당시 일본의 불교문헌을
서양에 알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동양의 불교를 영국 등 유럽 세계에 본
격 소개했다는 의미에서 일본불교를 국제화, 세계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다. 난조가 유학하던 1880년대는 이미 유럽에서도 제국주의帝國主義가 형성
되어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시대이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정
치권력을 주도적으로 발휘한 유럽의 제국은 전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등
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여기에 동아시아 종교로서 일본불교가 알
려지는 계기가 난조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인문종교 분야
에서 크게 영향력을 가졌던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의 제자로 영국
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난조는 그 자체로서 동양의 종교를 이해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난조의 역할과 그의
스승인 막스 뮐러의 활약으로 본격적으로 일본불교가 세계무대에 데뷔하
는 계기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1893년 9월 미국에서 거행된 시카고 만국
종교회의(萬國宗敎會議, The 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 Chicago)이다.
만국종교회의(사진 1)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에서의 1893년의 시점을 좀 더
분명히 해놓고자 한다. 이 시점에서는 도쿄 대학의 최초의 불교학강사였
던 하라 탄잔原坦山이 퇴직하였고(1888년), 그와 함께 강사를 담당한 요시타
니 카쿠주吉谷覺壽도 퇴직하였다(1889년), 이 요시타니를 이어 1890년 불교학
강사로 임명된 사람이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로서, 그는 불교학의 또 다른
분야로서 불교역사의 정립에 크게 힘을 기울였고 후대 인도철학이 인도철
학과로 독립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범어학을 담당하였던 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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