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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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같은 몸입니다.
천지 사이에 만물이 많이 있지만은 나 외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남을 도우는 것은 나를 도우는 것이며,
남을 해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해치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이치를 깊이 깨달아 나를 위하여 끝없이 남을 도웁시다.”
(1981년 6월28일, 정초우 총무원장 취임식 법어에서)
나와 삼라만상은 모두 근원적으로 동일성을 지닌 생명 공동체이다. 자
아가 동일시를 통하여 자신 아닌 존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개체적 자아
를 확장하여 큰 자아Self로 승화된다. 그 이면에는 차별과 대립을 넘어선
‘천지만물이 한 몸’이라는 선지禪旨가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천지만물은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등 천차만별로 나타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중생들은 이 차별상에 집착해 망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차별현
상의 근원을 무아, 무심으로 찾아가면 일체가 같은 뿌리요 같은 본체임을
발견하게 되어,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사실
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니 남을 도우는 것은 나를 도우는 것이며, 남을 해
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생명경시가 팽배한 오
늘날, 성철 스님께서 그토록 ‘삼천 배’를 강조한 것은 바로 진정한 참회와
비움의 자리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며, 다른 생명이 귀하고 그 귀한 생명
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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