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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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니 미루자고 속삭인다. 그런 내면적 갈등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단호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한 게으름의 속삭임을 뿌리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성유식론』은 근심소에 대해 “용맹과 단호함을 특성
으로 삼는다[勇悍為性].”고 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태함은 그럴 듯한 명
분과 이유를 들이대며 게으름으로 나를 유도한다. 단호하게 그런 유혹을 뿌
리치지 않으면 나태함의 소굴로 끌려가고 만다. 『성유식론』에서는 “용맹은
이기고 나아감을 나타내며[勇表勝進] 온갖 것에 오염되는 것을 가려냄[簡諸
染法].”이라고 했다. 부지런함이란 유혹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이
며, 옆으로 빠지고 싶은 대상에 물듦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셋째, 착한 일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흔히 ‘무엇이든 열심히 잘하면 된
다!’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바르고 선한 일을 향해서 부지런히 나아가
야지 악한 일이나 나쁜 방향으로 부지런히 정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
서 성실함이란 용맹스러운 힘의 세기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나쁜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무것 하지 않는 게으름보다 더 나쁘기 때
문이다. 그래서 『성유식론』에서도 근은 “오직 착한 성품만을 포함한다[唯善
性攝].”고 했다. 부지런함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 선법에만
해당하는 마음작용인 것이다.
다섯 단계
유식문헌에 따르면 근면과 정진을 실천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의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즉, 피갑被甲, 가행加行, 무하無下, 무퇴無退,
무족無足이다.
첫째 피갑被甲은 마치 ‘갑옷 입은[甲被]’ 장군이 적진을 향해 용맹을 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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