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0년 8월호 Vol.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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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토종이나 밀종은 타력에 의지하여 구제하기를 구하니, 근대의 비종
            교적인 조류와 합치하기 어려웠다. 천태종, 화엄종 역시 중국 불교의 전형
            적인 형이상학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과학이 중심이 되는 근대

            시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근대 불교학자 계백화는 이러한 상황에 대

            해 “지금 시기 과학 이론은 날마다 더욱 창성하여, 화엄학, 천태학은 듣는
            자가 받아들이기 막막하다”라고 표현하였다. 장태염은 “근대의 학술은 실
            사구시의 길로 나아가므로, 명대 유학자들이 미치기 어렵다. 과학의 맹아

            에 이르러서는 마음씀이 더욱 치밀해졌다. 따라서 법상학, 유식학이 명대

            에 적합하지 않고 근대에 특히 적합한 것은 그 학술의 추세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또 다른 불교학자 당대원은 “서양철학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
            으로는 유식학 만한 것이 없다.”고 단언하였을 정도이다. 이렇듯 중국 근대

            시기에 유식학의 유행은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그렇다면 유식 불교가 전통철학의 대표로서 서양 문화에 대응할 수 있
            었던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유식 불교가 갖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분석적인 성격이 과학으로 대표되는 서양 문화에 대응할 만하다고 여겨졌

            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유식 불교는 종교적인 측면과 학문적인 측면 두

            가지를 다 지니고 있으므로, 이성적인 철학으로서 비종교적인 근대의 성격
            에 걸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불교처럼 직관을 중시하고, 원융을 중시
            하며, 논리사변적인 측면이 부족한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

            이다. 예컨대 마음을 8식, 4분, 51심소법으로 나누는 등 인간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나 인명학을 활용한 운용의 논리, 추론과 같은 유식 불교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이 동일한 성격의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접점
            이 되는 동시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어책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서양 세력의 충격 하에서 유식학을 빌어 서학에 대응하는 것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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