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20년 8월호 Vol.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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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의 오는 해오이다. 얼음이 본래 물인 줄 알았어도 얼음덩어리가 여전
한 것처럼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 알았어도 망상이 여전한 것이 해오이다.
증오란 얼음이 녹아 자유자재한 물이 되듯 중생의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
져 부처가 된 것을 말한다. 견성은 곧 증오를 그 내용으로 하므로 해오를
견성이라 해서는 안 된다. 교와 선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보조 국
사는 선종의 종지를 바로 이은 분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
다.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은 교가의 설이지 선종의 설은 아니다. 10신 초위
에 깨달음을 얻어 3현10지의 계위를 거쳐 성불한다는 것은 화엄사상이다.
육조 혜능 대사로부터 바로 이어온 선문의 종지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
如來地이다. 한 번 깨치면 3현10지의 지위점차를 초월해 곧장 여래의 지위
로 들어가는 그것이 조계선曹溪禪이다. 어찌 지위점차를 밟는 것하고 지위
점차를 단박에 뛰어넘는 조사선을 같다 하겠는가? 지위점차를 내세워 단
계적인 수행과 깨달음을 논한다면 그것은 화엄선華嚴禪이지 육조로부터 바
로 이어온 선종은 아니다.
보조 국사가 육조 스님을 추종하긴 했지만 그 말씀을 살펴보면 사실 화
엄선이지 조사선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떻게 보조 국사의 가르
침이 선종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화엄선과 조사선을 구분
해 설명하면 더러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술 더 떠 교와 선이 어
떻게 다르냐고 덤비듯 따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것이다. 예
를 들어 말하자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대구·김천 등 역이란 역
은 다 거쳐 서울 가는 것 하고,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곧장 서울로 가는
것을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혹자는 ‘3현10성의 지위를 거치는
데에도 3아승지겁의 세월을 경과한다고 했는데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단박
에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며 믿으려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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