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0년 8월호 Vol.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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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634년.


           을 떠나버릴까도 잠시 고민했다. 중국의 불교도들은 부처님을 잃은 외로운

           금강 역사를 두 명으로 되살려냈다. 좌우대칭을 중요시 여겼던 중국인들
           에게 부처님 좌우를 금강 역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목숨이 곧 끊어져 부처님을 버리고 갈 것만 같았던’ 금강역사는 신라인

           들에 의해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의 문지기로 환생했다. 부처님의

           열반을 접한 금강 역사는 그림자처럼 호위하며 지녔던 금강저를 땅에 팽개
           쳐 버렸다. 그 때문일까. 634년에 조성된 경주 분황사석탑의 금강역사는
           금강저 대신에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 3·4). 1층 탑신 각 면에 한 쌍

           씩 모두 8구가 배치되었는데 금강저 없이 권법 자세로 표현된 8구의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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