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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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김안국의 시詩.
성종 5년(1474) 3월 기사에는 봉선전(奉先殿, 세조의 초상을 모신 사당)의 대소
제사에 술을 대신하여 차를 올리라고 한 하교도 눈에 띈다. 그러므로 토
공한 차는 주로 중국 사신이 귀국할 때 예물로 하사하거나 왕실 의례에서
쓰이는 정도였다.
한편 조선 전·중기의 불교계의 영향력 축소는 성종 2년(1471)에 도성 안
의 염불소를 폐지하는 조처를 내렸고 1475년에 도성 내외의 비구니 사찰
을 없애도록 조치하였다. 중종 대에는 불교 억제책이 강화되는 한편 왕실
의 기신재를 폐지함에 따라 왕실의 불교 기반이 와해하고 말았다. 중종 33
년(1538)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지 않는 사찰을 모두 철폐하였
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는 고려 시대처럼 풍요로운 차 문화를 이끌 수 있
는 실질적인 원동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 스님들은 차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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