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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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며 수행하는 풍토를 면면히 이어가고 있었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1506-
            1637)를 살았던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유장흥사遊長興寺」(사진 2)는 선
            방의 스님으로부터 차를 대접받았던 정황이 묘사되어 있다.




                선방에서 차를 마신 뒤 돌아가려는데                   禪窓茶罷客將歸
                쏴아아 맑은 바람 불고 가랑비 내리네.                颯颯淸風細雨霏.
                길손 잡으려는 산의 뜻, 누가 알리오?                山意欲留誰得會?

                시를 청하는 사미沙彌가 알아챈 나 보다.  乞詩僧亦解山機.



              앞의 시는 김안국의 『모재집慕齋輯』(사진 3)에 수록된 내용으로, 당시 정
            황은 “돌아가려 하는데 마침 가랑비가 내렸다. 사미 신인이 또 종이를 가

            져와 가는 길을 막고 글을 청하기에

            장난삼아 썼다[欲還適小雨, 沙彌信仁又
            持紙, 遮行索題戲書].”라고 하였다. 알려
            진 바와 같이 김안국은 김굉필의 제

            자로 도학에도 통달한 인물로, 사림

            파의 거두였기에 여러 관직을 전전했
            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
            나 조광조 문하의 소장파들이 참화

            를 당할 때, 파직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이천으로 낙향하여 후학
            을 가르쳤다. 그가 방문했던 장흥사
            는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사찰이

            므로 그가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칠                 사진 3. 김안국의 문집인 『모재집慕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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