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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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잇큐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원오극근의 묵적이
라는 점일 것이다. 잇큐는 임제선臨済禅의 정통을 잇는 승려로 자처하고 형
식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는 견성오도見性悟道를 중요시하며 선의 민중
화에 노력한 일본의 대표적 선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원오극근은 주지
하다시피 임제선을 대표하는 『벽암록碧巌録』 저자로 한국과 일본에 임제선
을 전해 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와 호구소륭(虎丘紹隆, 1077-1138)의
스승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임제종은 모두 호구소륭의 법맥法脈에 속하기
때문에 당연히 호구소룡의 스승인 원오극근은 일본 선종에 있어서 매우 중
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하겠다. 따라서 슈코가 이러한 잇큐에게서 원
오묵적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중국과 일본의 임제선에서 매우 주요시되는
두 선승인 원오극근과 잇큐의 계보를 잇는다는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
런 그가 처음으로 선차 다풍을 일으켜 일본 다도의 근간을 일구어낸 다
승茶僧이기에 그를 일본 다도의 개산으로 부르는 까닭이라 하겠다.
이후 대덕사는 다인들의 참선 수행의 장이 되었다. 다케노 조오와 센리
큐도 이곳에서 참선하여 득도하였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센리큐의 후손인
다도 유파의 수장 이에모토家元들은 이에모토가 되기 전 반드시 대덕사에
서 선 수행을 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다실에 최초로 묵적을 걸다 슈코는 평생 차를 하는 다승으로서 이
원오묵적을 소중히 아꼈다. 그는 원오묵적을, 『유마경』에 나오는 ‘방장方丈’에
서 착안해 만든 4장반 다실에 걸어 놓고 차를 하였다. 이것이 일본 다실에
묵적을 거는 시초가 되었다(사진 2). 이전에는 산수화 등의 회화작품을 걸어
놓고 감상하는 문화적 유희를 즐겼기 때문이다. 묵적이란 선승의 득도의 경
지가 표현된 글이기에 선승의 가르침, 또는 공안公案으로서 매우 소중히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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