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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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법을 편다는 말을 듣고, 수륙만리를 멀다고 생각
           지 않고 신라에서 중국으로 선무외 화상을 찾아갔다. 가서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곡히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렇게 3년 동안이나 온갖 노력을

           다하여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시종 거절하였다.

             하루는 큰 쇠 화로에다 숯불을 가득 담아 그것을 이고 무외 스님의 방
           옆에 가서 서 있었다. 화로가 달아서 머리가 익어 터지니 소리가 크게 났
           다. 무외 스님이 놀라서 나와 보고는 급히 화로를 내려놓고 물었다.

             “왜 이러느냐?”

             혜통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법을 배우러 천리만리를 멀다 않고 왔습니다. 만약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면 몸이 불에 타 재가 되어 날아가면 갔지 죽은 송장으로는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무외 스님이 그 기개를 인정하여 터진 곳을 손으로 만져 합치고 법을 가
           르쳐 주기로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혜통 스님은 크게 성공해 신라로 돌아
           와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그 후 머리가 나은 곳에 큰 흉터가 졌는데, 왕王자 모양이 되어 있어 세

           상 사람들이 왕화상이라고 불렀다.            5)


             포모 시자布毛侍者     초현통招賢通 선사는 당나라 때 사람이다. 젊었을

           때 육관 대사 벼슬을 하다가 홀연히 지상의 허망을 깨달아 벼슬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 당시 나무 위에 새집처럼 집을 짓고 사는 이가 있었으니,






           5)  『삼국유사』(『한국불교전서』 제6권, p.245a)에 수록된 ‘혜통항룡惠通降龍’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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