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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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평온한 마음으로 생명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는 것이 불해라는 것
           이다. 따라서 불해는 어떤 실체적 심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분노를 제거하고, 다른 생명에게 위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분노

           가 사라진 무진이 실재적 작용이라면 불해는 무진에 의지해 나타나는 결

           과라고 할 수 있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무진과 불해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분해 설

           명한다. 즉, “무진은 생명의 목숨을 끊는 진瞋의 반대이고[無瞋翻對斷物命
           瞋], 불해는 생명에게 손해를 입히고 괴롭히는 해害의 반대이다[不害正違損

           惱物害]. 무진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無瞋與樂], 불해는 고통을 없애주는
           것[不害拔苦].”이라고 했다.
             무진이란 생명을 죽게 하는 에너지인 분노[瞋]의 반대 개념으로 다른 생

           명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與樂]’이라고 했다. 화내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

           로 다른 생명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진이라는 것이다. 반면 불해란 생
           명을 괴롭히고 해를 입히는 것의 반대 개념으로 다른 생명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拔苦]’이라고 했다.

             그런데 『성유신론』은 무진과 불해를 자비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다. 무

           진과 불해는 “자와 비의 서로 다른 양상을 드러내는 것[慈悲二相別].”으로 설
           명하고 있다. 보통 자비慈悲를 한 글자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자와 비는 다
           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해란 자비의 덕목 중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 즉

           ‘비悲’를 근본적 성질로 한다.

             세친의 『대승오온론』에서는 불해에 대해 “해 끼침을 다스리고 연민의 마
           음[悲]을 본성으로 한다[謂害對治, 以悲為性].”고 했다. 불해의 특성이 되는 연
           민[悲]은 고통을 제거해 주는 발고拔苦의 의미로 연결 짓고 있다. 즉 중생의

           괴로움[苦]에 대해 공감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는 것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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