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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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생不殺生을 제시한다. 불살생계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자비로 보
살피고 존중하는 실천이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이타적 실천이며 불교적 선善이기 때문이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11가지 선
심소 중에 마지막 항목인 불해不害 역시 이런 맥락을 담고 있는 교설이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보살피는 것이 ‘착한 마음[善心所]’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불살생 전통은 인도의 ‘아힘사ahiṃsā’ 사상에서 유래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아힘사는 불교뿐
만 아니라 자이나교를 비롯해 인도의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가르침으로 신
봉하고 있다. 불교에서 아힘사는 ‘불해’와 ‘불살생’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번역된다. 정신적 측면에서 선심소를 지칭할 때는 ‘불해不害’로 번역되고, 행
위윤리인 계율로 제시될 때는 ‘불살생不殺生’으로 번역되었다. 불해가 생명존
중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라면 불살생은 구체적 실천을 의미한다.
불해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모두 선심소로 분류되었다. 설일체유
부에서는 10가지 대선지법大善地法 중에 하나였고, 유식학과 법상종에서는
11가지 선심소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대승오온론』에 따르면 불해란 “해치
려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연민의 마음을 갖는 성품[謂害對治, 以悲為性]”이라
고 정의했다. 중생들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의 마음 때문에 자기중심적 욕심
에 물들어 간다. 그런 욕심으로 인해 남의 것을 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생명에게 위해를 가하게 된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불
해는 타자를 해치려는 마음을 제거하고, 뭇 생명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삶 속에서 실천토록하기
위해 모든 계율의 첫 번째 조항으로 불살생을 제시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살림에 동참하는 것이 불해의 적극적인 의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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