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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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해不害와 무진無瞋


              불해가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라면 불해를 실천하기 위해서

            는 마음이 고와야 한다. 그래서 『성유식론』에서는 불해를 무진無瞋이라는

            심소와 결부하여 설명한다. 즉 “모든 유정有情에 대해 손해나 괴로움을 주
            지 않는[不為損惱] 무진을 본성으로 삼는다[無瞋為性]. 해치려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能對治害] 함께 슬퍼하는 연민을 업으로 삼는다[悲愍為業].”라고 정

            의했다.

              첫째, 불해는 ‘무진을 본성[性]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불해의 근본은 다
            른 생명을 해치거나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진이 기본
            이 되어야 한다. 무진이란 ‘화내지 않음’, ‘분노 없음’을 말한다. 마음에 분노

            가 가득 차 있으면 자연히 폭력적이 되고, 그런 폭력적 에너지 때문에 다

            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분노의 에너지가 사라지
            고 마음이 호수처럼 고요해야 해침을 막고 다른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

              둘째, 불해는 ‘연민의 마음을 작용[業]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분노의 에

            너지를 잘 다스려서 마음이 평화로워야 해침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能
            對治害]. 이를 바탕으로 모든 생명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 불해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논서 에서는 ‘비민悲愍’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타자의

            고통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공감이 불해의 작용이라는 것

            이다.
              이렇게 보면 불해의 핵심은 마음에 분노가 없는 무진임을 알 수 있다.
            『성유식론』에서는 “무진심소가 유정에 대해 위해를 가하거나 괴로움을 주

            지 않는 것[不為損惱]을 가칭으로 불해라고 한다[假名不害].”고 했다.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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