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P. 27
고 하자마자 곧 용담 스님이 촛불을 확 불어 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바
로 이때 덕산 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그러고는 용담 스님께 절을 올리
니 용담 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 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
하였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 7)
모든 변론과 언설이 하도 뛰어나 온 천하의 사람이 당할 수 없다고 해
도, 깨달은 경지에서 볼 때는 큰 허공 가운데 있는 조그만 터럭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깨친 것은 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것으로, 이
대도라는 것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수단을 다하는 재주가 있다 하여도 그
것은 큰 골짜기에 작은 물방울 하나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지식이 장한 줄 알았다가 바로 깨쳐 놓고 보니 자기야말로 진짜 마군이의
제자가 되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덕산 스님은 이렇게 깨치고 나서, 사람을 가르치는 데 누구든 어른거리
면 무조건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부처님이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리
7) 『연등회요聯燈會要』(X79, p.172a),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