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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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初造大藏經이 있었다.
그런데 1232년 몽골군이 고려를 침공하여 전국토를 유린했을 때 이것이
불에 타 세상에서 사라졌다. 충격에 빠진 고려는 1237년 고종高宗 24년부
터 불경판각 사업을 거국적으로 다시 시작하였다. 1248년까지 일단 마무
리를 한 것이 현재 있는 팔만대장경의 목판이다. 모두 1,496종 6,568권으
로 경판經板의 수는 81,137개로 양면에 새겨졌는데, 동아시아에서 목판 전
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경판일 뿐 아니라 내용도 가장 충실하고 정확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초조대장경이 없어진 후 다시 조
성한 것이라 하여 재조대장경再造大藏經이라고도 한다.
이 대장경을 조성하여 봉안한 이후 부처님이 나라를 보우保佑할 것이라
는 마음의 위안을 삼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진리를 찾아가는 입장에서
는 이를 끌어안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인출하여 연구하고 전파하고 모든
백성들이 터득하고 실행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고려는 망해버렸고, 유
교를 국교로 들고 나온 조선에서는 불교는 왕실 불교로 겨우 연명하게 되
었다. 사찰은 권력을 쥔 자들이 빼앗아 별장이나 서원을 지어버렸고, 승려
들은 천민으로 취급되어 도성에 출입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나마 뛰어
난 인재들의 피를 낭자하게 뿌리고 왕권을 찬탈한 세조가 천벌이 무서웠
는지 불교를 지원하면서 대장경도 50질을 인출·간행하여 전국 주요 사찰
에 배포하였다. 그런데 이를 다른 면에서 보면, 그때까지 그 중요한 경전을
모두 읽거나 충분히 공부하지도 않은 채 불교철학을 한 것인가 하는 의문
이 든다. 물론 신라가 전승기를 구가할 때 자장(慈藏, 590-658), 원측(圓測,
613-696), 의상, 원효(元曉, 617-686) 등 천재적인 불교철학자들이 나와 『화엄
경』, 『금강경』, 유식철학 등을 터득하고 논문과 주석서를 쓰면서 그 가르침
이 왕실이나 백성들에게 전파되기는 했고, 고려에 와서는 불립문자不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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