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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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와 돈오점수를 기본을 하는 선종이 힘을 얻어 발전하였지만, 많은 불경
이 판각까지 되어 있었음에도 이를 인출하여 밤 새워가며 공부한 열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억압되어 불가에서 암암
리에 전해 내려온 선종이 오히려 전법에 수월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지식을 통하여 지식 위로!’, ‘문자반야를 통하여 반야prajñā로!’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보면,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인류
역사에서 남은 귀한 자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가고 소중하
게 여긴다면 그야말로 붓다가 기가 찰 일이다. 더하여 이것을 경매에 내놓
으면 값이 얼마나 되는 앤틱antique일까 하는 시선들을 보게 되면, 붓다가
나타나 “너희들이 껴안고 있는 그 물건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고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교를 연구하려고 일
본으로 떠났다. 연구자들이나 승려들이나 일본으로 불교공부를 하러 유학
한 이유는 불교학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대부분 일본학자들이기 때
문이다. 지금도 불교나 경전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하려면 결국 일본학
자들의 저술들을 읽게 되고, 그들이 번역한 자료들을 보게 된다. 신라와 고
려의 불교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하면 그 이후로도 불교에 대한 연구
자들이나 승려들이 기라성 같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
각을 해본다. 일본은 불교국가도 아니고 국민들 사이에 불교가 성하지도 않
은 나라임에도 불교연구가 세계 정상인 이유를 깊이 새겨볼 일이다. 팔만
대장경을 인출한 책을 애걸복걸하며 우리에게서 얻어간 일본에서 말이다!
먼저 불교를 철저히 공부한 다음에 깨달음의 단계로 나아가자고 하면,
원택圓澤 대화상으로부터 몽둥이질을 당할 일이다.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
님은 이제 안계시니까 몽둥이를 드실 수도 없다! 옛날에는 염화실拈花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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