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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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 나는 아직도 몇 차례 손에 잡았다가 중단하고 혹시 단테가 살았
던 곳에라도 가보면 무엇인가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피렌체
Florence, 베로나Bologna, 라벤나Ravenna 등 그 연고지를 찾아보기도 했지
만, 동네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과 아이스크림만 먹고 돌아왔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신학대전神學大典,
Summa Theologiae』은 어떠한가. 야심만만하게 이에 도전했다가 중도에 포
기한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많으리라 생각된다.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동시에 연구한 그가 궁금하여 젊은 시절 툴루즈Toulouse로 가 자코뱅성당
Church of the Jacobins의 제단에 있는 그의 관을 한참이나 서서 보고, 나
이 들어 『신학대전』을 읽다가 나폴리Naples에 있는 산 도메니코 마기오레
San Domenico Maggiore 수도원에서 그가 수도한 방에도 들어가 봤지만, 무
엇을 쉽게 얻으려고 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만 확인했다.
아무튼 성철 대화상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장안
의 지가를 올린 『자기를 바로 봅시다』도 쉽다고 읽어 보았지만 아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진리를 터득하는 것에는 머리로 먼저 이해하고 체득하
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행자로 나서서 목숨 걸고 깨달음의 길로 매진
해도 한 소식했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데, 속세에 사는 중생의 경우에는 우
선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그 많은 불경을 다 읽고 공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경전들을 공부하고 이를 터득한 이후에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 어디에서든 불교공부에서 경전과 원리를 공부하고 터
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진리를 발견하자’고 하는 곳은 없다.
성철 대화상도 경전에 의거하여 수행을 말했다. 이런 과정이 필요 없는
경우는 공자가 말한 생이지지生而知之를 한 경우뿐이다. 보통은 학이지지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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