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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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즉, 황제 폐하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중흥과 유신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대법회였다. 5월5일 도성 안 원동의 북일영(北一營, 현재 동숭동 서울대
병원자리)에서 개최한 한일승려합동무차대법회韓日僧侶合同無遮大法會는 당시
북한산 승대장僧大將이었던 중흥사 주지 권재형權在衡과 남한산 승대장 이
세익李世益을 비롯하여 화계사華溪寺·백련사白蓮寺·용주사龍珠寺 및 금강산
등에서 300여 명의 스님들이 운집했다. 아울러 외부外部·학부學部·농상공
부農商工部 대신과 김홍집 총리대신의 대리 등 20여 명의 조정 고관이 참석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대표적인 지성이었던 이능화는 당시 참
여했던 사람들이 “조선의 승려는 수백 년 동안 문외한門外漢의 신세였는데,
오늘에 와서 비로소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로써 불
일佛日이 다시 빛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용주사의 취허就墟 스님은 사노 젠레이에게 감사장을 증정하기도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극히 비천하여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기를 지금까지 5
백여 년이라 항상 울적하였습니다. 다행히 교린交隣이 이루어져
대존사 각하께서 이 만리타국에 오시어 널리 자비의 은혜를 베
푸시니 본국의 승도로 하여금 5백 년래의 억울함을 쾌히 풀게
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왕경王京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실로 이
나라의 한 승려로서 감사하고 치하하는 바입니다. 이제 성에 들
어가면서 감히 소승의 얕은 정성으로나마 배례하나이다.”
스님의 도성 출입금지 해제에 대한 감회와 이후 불교계의 상황을 바라
보는 시각은 엇갈려 있다. 혹자는 “한국불교계 안에 친일의 뿌리를 내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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