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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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것”이라고 했으며, 또 다른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불교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환영받았던 해제 조치가 한국 불교발전의 계기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친일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일본불교로의 예속
화의 단서를 열었다는 점에서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다카하시 도오
루의 의견도 주목할 만하다.
“사노가 경성에 오랫동안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조선불교의 생
기가 이미 다하여 승려에게 종승宗乘도 없고, 종지宗旨의 신조도
없음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일본불교의 종지로 개
종케 하고, 일련종으로써 조선불교계를 통일하는 것은 반드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고, 이때에 조선 승려를 위한 파천황破
天荒의 은혜를 베풀어 이로써 저들을 일본불교로 유인하는 계
기를 삼고자 꾀하였다. 그리하여 기재奇才 사노가 붙든 것은 실
로 조선 승려에 대한 입성해금入城解禁의 수행이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불교의 생기가 다해 한국의 승려들에게는 종승도,
종지도 없다고 한 것이다. 이상은 승려의 도성출입금지 해제가 일본인 승
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이후 한국불교가 굴절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
었다는 부정적인 시각과 해제 자체는 우리의 자체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견해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스님들의 도성출입을 두고 이렇게 장황하게 떠든 것은 우리는 우리 불교
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無知했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노에
게 감사장을 준 그 상황을 친일이니 순진하다느니 지적한 것 역시 그 시절
을 모르고 하는 공허한 말이다. 다카하시는 조선불교의 생기가 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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