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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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생명체는 계속 몸을 바꾸면서 자신의 상태를 이어간다.
의존하며 연속되는 무상한 흐름의 중도 낡은 세포를 새 세포로 바
꾼다는 것은 생명체가 주변과 물질을 교환한다는 것이며, 이는 생명체가 주
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대한 생명체의 의존성은 소화나 호흡 같
은 신진대사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명체는 이를 통해 몸을 바꿀
물질을 확보하고 몸의 상태를 유지할 에너지를 획득한다. 이게 불가능하면
생명을 잃는다. 생명은 이처럼 주변에 의지하여 자신을 지탱하기 때문에
연기緣起이며, 분수처럼 자신을 바꾸면서 이어가기 때문에 무상無常이다.
세포든 개별생명체든 모두 순환하면서 바뀐다. 순환하면서 바뀌는 과정
은 앞과 뒤가 같은[同一] 것도 아니지만 전혀 다른[異] 것도 아니어서 불일불
이不一不異다. 새로운 물방울이 계속 들어오므로 이전과 같지도 않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므로 다르지도 않다. 생명 현상 자체가 그대로 중도中道의 흐
름이다. 그런데 생명체만이 아니다. 화폐가 흘러 다니고, 생명체가 나고 죽
으면서 생명종이 이어지고, 생명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생명 현상이
이어진다. 지구의 표면과 대기가 변하고 별이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 화폐
와 세포와 개별생명체와 생명종과 생명 현상과 지표면과 지구 대기와 항
성 모두가 전부 무상한 연기의 흐름이다. 실체가 없이 불일불이不一不異한
중도의 흐름이다. 함허득통 스님의 시로 글을 맺는다.
生也一片浮雲起 삶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 자체엔 본래 실체가 없으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의 오고감이 또한 이와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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