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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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설명한다. 우주가 고정돼 있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과 지구가 고정돼
있고 우주의 모든 별이 회전한다는 것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벽하
게 같다. 이는 모든 운동이 상대적이라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관점과도 일
치한다.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의 차이는 태양과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고려
할 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구중심설은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하기 위
해 주전원epicycle 등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역행을 설명하기 위
한 것일 뿐, 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장치였다. 이와 달리 태양중심설은 행
성의 역행이나 내행성의 최대 이각 등 태양계 행성의 특이한 겉보기 운동
을 타원 궤도만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금성의 겉보기 크
기의 변화, 보름달 모양의 금성, 연주시차,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의
운동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우주가 회전하는가 아니면 지구가 회전하는가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공전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갈릴레이 시절에도 많이 축적돼 있었다.
그러나 지구중심설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희생이 따르기도 했다. 무한 우주론을 주장한 브루노는
화형에 처해 졌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이단심문소에서 자신의
이론을 취소하고 가까스로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를 단순히 종교와 과학 사이의 대립 혹은 과학에 대한 종교의
탄압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의식의 근저에 있
는 편향성 혹은 경향성이 이런 역사를 가능하게 했던 보다 근원적인 이유
일 수 있다. 종교와 과학 사이에 있었던 대립이나 탄압은 단지 인간의 의
식 내부에 존재하는 경향성이 표출된 표면적 현상일 수 있다. 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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