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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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잘 맞아떨어지
            기 때문이다.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감각 경험을 진실이라고 믿도록 우
            리 마음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감각을 통해 파악한 외부 상황을 무시한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는 도시 생활에서도 그렇다. 일례가 자동차 운전이다. 감각기관으로 파악
            한 외부 상황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어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자동차
            이기 때문이다. 운전이야 안 하면 그만이지만, 야생에서는 외부의 위험요

            인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사자 무리 옆에서

            임팔라가 풀을 뜯고 있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감각 경험의 한계     외부 상황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생명

            체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각을 믿어야 했다. 우리

            는 이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생명체다. 그러므로 감각 경험을 믿는다는 것
            은 38억 년 진화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놓은 흔적이다. 지구가 자
            전하는 것을 알면서도 해가 뜬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감각 경험에 충실

            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다. 무수한 세월 동안 생존 경험을 통

            해 쌓이면서 형성된 아뢰야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의식을 그
            런 방식으로 지탱한다.
              우리의 감각은 일차적으로 생존을 위한 장치다. 그래서 감각 경험에 의

            한 판단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

            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이차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지구의 자전을 알
            면서 해가 뜨거나 진다고 생각하더라도, 감각 경험의 세계에서는 전혀 문
            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감각 경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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