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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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타나고 고양이에게는 설탕물이 달지 않은 세계가 나타난다. 우리에겐
짜고 단 세계가 나타나고, 하루에 한 번 온 우주가 회전하는 세계가 나타
난다. 한 시간에 한 번 자전하는 별에 산다면 24시간 동안 24번의 일출과
일몰을 보는 세계가 나타나고, 몇 걸음 걸으면 한 바퀴 도는 어린왕자의 별
에 산다면 산책하면서 보고 싶은 만큼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세계가
나타난다.
끝없는 세계가 나타나더라도 연기緣起는 무아無我이고 무자성이어서
공空이다. 용수 보살이 말씀하셨듯이, 연기이므로 공이다. 이에 대해선 다
시 쓰기로 하고, 지안 스님의 선시산책에 실린 편양 언기 스님의 시로 글을
맺는다.
雲走天無動 구름이 달려가나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舟行岸不移 배가 가도 언덕은 옮겨가지 않는다.
本是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起歡悲 어디에 기쁨과 슬픔이 일어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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