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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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절에 최치원의 서암書巖 기각棋閣이 있다. ○홍간洪侃이
『실록』을 말리러 가는 추옥섬秋玉蟾을 전송하는 시에, “내 들으
니 가야산 해인사는, 유선儒仙 최 고운이 일찍이 놀던 땅. 인간
의 풍월風月은 이르지 못하고, 보서寶書와 옥첩玉牒이 구름처럼
쌓였다네. 이 속에 가는 사신도 반드시 신선의 무리이리라. 3년
만에 학 타고 하늘에서 내리는구나. 그대 금년에 이런 걸음하게
되니, 가을 풍경이 사람과 함께 맑으리라. 푸른 산 석양에 영
가永嘉 길이고, 붉은 단풍에 맑은 강 진양성이라. 역마는 훨훨
나는 기러기 같은데, 몸은 시원한 바람 탄 것보다 상쾌하리. 삼
한三韓 23대의 보록寶錄 하나하나를 구름 낀 산속에서 뒤적거리
리.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 일 없으리니, 풍요風謠를 채집하여 남
정기南征記를 지으리.”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30권 경상도, 합천군陜川郡 「불우」조 중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의 해인사 항목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 가
운데 일부분이다. 해인사의 창건 시기뿐만 아니라 최치원崔致遠의 기록을
소개했고, 고기古記의 기록도 참고하였다. 염정수(廉廷秀, ?-1388)와 권근(權
近, 1352-1409),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시를 수록하여 해인사의 가치를
드높였다. 또한 김종직의 시, “세 선사 유적이 있으니, 찾아보매 듣던 바와
같도다. 도의 운치는 참으로 짝할 이 없었고, 신통은 무리에서 뛰어났었다.
지원祗園엔 꽃이 비오듯 했을 것, 향적香積엔 밤을 응당 나누었으리. 허다
한 방포方袍 입은 사람들, 누구라 그렇게 공부 부지런함 알리.”라는 내용의
시를 【신증新增】으로 추가하였다. 비록 절의 사정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지
는 않지만 편린이라도 남겨두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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