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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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處와 삼법인三法印을 통한 업설業說에는 ‘삼세인과三世因果’를, 육육법六六
法에 있어서는 ‘십팔계十八界’, 오온五蘊은 ‘육계六界’, 십이연기十二緣起는 진리
의 세계인 ‘명明’을 그 성립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반야’는 바로 궁
극적인 진리의 세계인 ‘명’조차도 스스로 존재[自在]할 수 있는 자성自性이
비어있음[空]을 여실하게 ‘앎’이라는 개념이며, 그러한 반야도 역시 자성이
비어있다는 ‘반야개공般若皆空’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해 나아간다. 그런데 이
러한 반야법은 역시 성립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어떠한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를 제시한다면 제법에 자성이 없다는 반야의 개념과 자체모순이 발생
한다. 그 때문에 제법의 성립근거를 ‘유有·무無·역유역무亦有亦無·비유비
무非有非無’의 ‘사구四句’로 ‘무한부정[百非]’, 즉 ‘사구백비四句百非’로 진행시켜
반야법의 성립근거는 인간이 가진 논리형식으로는 결코 논증할 수 없는 것
이며, 그 자체가 다만 ‘희론戱論’일 뿐이므로 ‘지식止息’해야 하고, 반야법은
‘부사의不思議’하게 성립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런데 구마라집은 서역의 반야학과는 다르게 반야법의 성립근거로 ‘실
상實相’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반야의 대표적인 논리
가 ‘소상파집’인데, 궁극적인 진리를 ‘실상’으로 제시한다면 역시 모순이 발
생하지만, 구마라집은 이를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논리로 해결하고 있다. 이
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승조僧肇의 『주유마힐경注維摩詰
經』에 실린 구마라집의 주석을 살펴보면 도처에 ‘실상’과 관련된 논술을 확인
할 수 있다. 더욱이 구마라집 『실상론實相論』 2권을 지어 후진後秦의 군주인
1)
요흥姚興에게 헌상하였다는 기록 이 있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1) [梁]慧皎撰, 『高僧傳』卷2(大正藏50, 332c), “唯爲姚興著實相論二卷.”, [後秦]僧肇撰, 『肇論』(大正藏45, 162b) “什法師
立義, 以實相爲宗, 作實相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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