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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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추구하는 유가와 ‘무無’를 추구하는 도가의 사상을 결합시키는 것
은 중국의 전통사상으로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는데, 이를 가장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바로 반야般若의 논리였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에서는 물질의 변화와 정신의 관계성을 세밀하게 분
석, 즉 ‘석공析空’하면서 점차적인 교의敎義를 시설하는데, 그에 따르면 일반
인들이 ‘생멸生滅’로 보는 현상을 ‘유무有無’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반야법’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유무’조차도 집착에 의한 ‘상相’으로 파악하여 ‘소상파
집掃相破執’의 입장에서 이른바 ‘유무쌍견有無雙遣’, ‘진속무이眞俗無二’의 논리
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중생즉불衆生卽佛’,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
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는 철저하게 ‘즉卽’의 관
계, 호상관대互相觀待라는 논리적 단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반야의 논리과
정은 역으로 ‘유’와 ‘무’를 모두 버리지 않으면서도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를 창출할 여지가 존재하는데, 이를 교묘하게 활용한 천재가 바로 왕
필王弼이며, 그를 본격적으로 논구한 것이 바로 ‘현학玄學’이다.
현학은 바로 유가의 강상명교와 도가의 무위자연, 즉 철학적인 입장에
서의 ‘유’와 ‘무’를 지양止揚하여 이른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완벽한 통치이념
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왕필의 ‘귀무론貴無論’,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나타난 배위裴頠의 ‘숭유론崇有論’, 이 ‘무’를 귀하게 여김과 ‘유’를 숭상해야
한다는 두 가지 논리를 지양하여 나타난 곽상郭象의 ‘즉유즉무卽有卽無’를
통한 ‘독화론獨化論’을 통관하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러나 조위는 사마의司馬懿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 세력들의 쿠데타인 ‘고
평릉高平陵 사변(249)’으로 인하여 실권을 빼앗기고, 265년에 망하게 되어 서
진西晋이 시작되었다. 서진은 역사가들이 ‘군마시살도群魔弑殺圖’라고 표현하
는 것과 같이 5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 수십 차례의 내란과 북방 소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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