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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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들의 침입을 겪었고, 결국 ‘영가永嘉의 난(307-312)’을 통해 북방을 잃고
남하하여 건강(建康. 현 南京)을 도읍으로 동진東晋을 세웠으며, 북방에는
다섯 소수민족[五胡: 匈奴·羯·鮮卑·氐·羌]이 16국을 건립하여 이 시기를 ‘동진
십육국’이라 칭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암흑기에 중국 민중들
대다수가 불교를 신앙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조위시기에 중국인들의
출가를 허용한 이후 서진시기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출가하였고, 또한 끊
임없는 전란의 상황에서 불교가 제공하는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안심安心을
찾고자 하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대사조時代思潮는 여전히 현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향에 따라 중국불교의 흐름은 바로 대승 반야학이 주도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주사행朱士行은 당시 유일한 반야부 경전인 『도행반야경』과 그에 대한
재역본인 『대명도무극경』에 미진함이 있다고 생각하여 원본을 구하러 서역
으로 구법행을 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서진시기에 축법호竺法護, 축숙란竺
叔蘭, 지민도支愍度 등 수많은 역경승들이 중국에 도래하여 반야부 경전들
을 역출하였는데, 이들이 채택한 번역의 방법론을 바로 ‘격의格義’라고 칭한
다. ‘격의’란 바로 중국의 유사한 사상과 배대하여 난해한 반야의 논리를
쉽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격의는 바로 당시 시대사조인 현학
을 원용한 것이고, 불교의 역경뿐만 아니라 강설, 찬술 등의 전체적인 부분
에 있어서 이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격의불교’라고 칭한다.
동진십육국 시기에 들어서 중국불교에는 사상적으로 한 획을 긋는 중요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구마라집鳩摩羅什이다. 구마라집이 수행
한 중국불교에 대한 공헌은 몇 권의 책으로 설명해도 모자랄 정도이지만,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바로 반야학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제법의 시설施設에는 반드시 성립근거를 제시한다. 예컨대 십이처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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