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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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니,  미래의  불교  청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실천해 주

             기를 당부하였다.(「靑年佛敎
             界에 對하야」, 5호)

               이는  만해  한용운(1879-
             1944)이 1910년 탈고하고 1913
             년 5월25일 간행한 『조선불교

             유신론』의 불교개혁의 논리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만해가 불
             교서관에서 『조선불교유신론』
             을  출판하면서  표제  글씨를

             박한영에게 의뢰한 것(“石顚散

             人 籤”)은, 출판의 선후와 상관
             없이, 9년 선배인 박한영과 만              사진 4. 『해동불보』 4호 대원경 란(사산비명).
             해의 개혁 논리에 상호 공감대가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교학 연찬과 불교사 자료 발굴(사진 3)    박한영은 실제로 『해동불보』를 자
             신의 학적 탐구의 실제를 발표하며, 불교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
             색하는 ‘교양’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조선의 설법과 세계의 포

             교」(3호)에서 ‘중류 이상의 수준에 맞는 설법’이 없는 것이 최근 우리 설법

             의 문제라 지적하며, 세계의 포교 방식인 논리학(3단논법)과 상식(과학 철학
             문학 사회학)을 철저히 연구하여 포교할 것을 주장하였다. 6회에 걸친 연재
             물 「법보단경해수일적강의法寶壇經海水一滴講義」(3-8호)는 육조 혜능의 『법보

             단경』을 ‘역술譯述’한 것이다. 그는 또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聖住寺無染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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