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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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불보』의 목차에 수록
                                                된 글의 편수는 124편이다.
                                                이중 박한영은 35편, 최동식

                                                은 36편의 필자로 등장하며,

                                                기자 명의로 29편이 수록되
                                                었다. 기자는 박한영과 최동
                                                식을 포괄하므로, 결국 박한

                                                영과 최동식의 글이 『해동불

                                                보』 전체 글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해동불보』는 선

                                                암사의 강맥을 공통의 자산

                                                으로 삼고 있는 두 인물, 즉
          사진 3. 『해동불보』 2호 무봉탑(박한영 학술논문).
                                                박한영과 최동식의 2인 잡지
          로 규정할 수 있다.




            청년의 교육과 포교     박한영은 여러 편의 논설에서 현재의 조선불교
          계에 인물이 없는 것은 영재를 ‘교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면서(「敎養徒
          弟는 紹隆三寶」, 1호), 포교를 위한 청년 도제 교양을 위해 불교의 교재개발

          이 필요하며, 대승 교리를 더욱 연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將何以布敎

          利生乎아」, 2호) 조선의 불교계도 기독교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청년도제
          를 양성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등 미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佛敎의 興廢所以 深究 今日」, 4호) 이어 기존의 노승들이 학식이

          부족하고 견문이 좁으며 완고하고 호기가 없어 불교를 유신惟新하기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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