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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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屋라는 상호를 가진 상인으로서 상당한 지위와 재력을 지닌 것으로 전해
             진다. 그런데 리큐가 다나카가 아닌 센千이라는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은 조
             부 센아미千阿弥의 ‘센’ 한 글자를 따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받은 것으로 전해

             진다. 조부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장군 가문의 예능을 담당하던 도보슈로서

             센아미라는 이름으로 사카이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리큐와 히데요시




               한편 리큐라는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
             시와 관련이 있다. 히데요시는 하극상의 시
             대에 농민에서 무사로 승승장구하여 마침

             내 천황으로부터 최고 지위인 관백의 자리

             를 얻게 된다. 관백 수여에 대한 감사의 의
             례와 그의 권위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히                사진 2.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 MOA미술관
                                                    재현.
             데요시는 황금다회(1586)를 열었다. 차를 제

             외한 모든 기물을 금으로 장식한 황금다실에서 황금다완으로 천황에게 그

             린의 말차를 올렸다(사진 2). 이 황금다회를 프로듀스한 인물이 바로 리큐
             였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다실설계와 다회를 기획하였지만 상인 계급인
             리큐는 궁중 출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오기마치正親町천황에게 리큐

             라는 거사호居士号를 특별히 하사받음으로서 출입을 허가받았던 것이다.

             그의 생전에는 대덕사에 참선하여 받은 소에키宗易라는 법명을 주로 사용
             하고 있었다.
               여기에 등장한 황금다실로 상징되는 히데요시의 황금차는 리큐의 선다

             풍인 와비차와 비교되어 리큐가 할복의 명을 받는 원인 중의 하나로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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