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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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같이 모여들던 곳이고, 1203년에는 고려 무신정권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킬 정도로 사세가 컸던 화엄종 대본사인 부석사가 지금과 같은 작은
사역寺域일 리가 없다고 한다. 기록에 전하는 해동 제일의 누각 취원루聚
遠樓, 심검당尋劒堂, 만월당滿月堂, 서별실西別室, 만세루萬歲樓, 약사전藥師
殿, 수비원守碑院, 영산전靈山殿과 터만 남아 있는 은신암, 극락암極樂庵 그
리고 기와 명문銘文으로 확인되는 천장방天長房, 대장당大藏堂, 봉황지원鳳
凰之院과 같은 당우들을 다시 복원해보면, 부석사는 창건 이후 14세기 후
반 왜구의 침탈로 사역 전체가 불에 타기 전까지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한
사역과 동쪽으로 보물 제220호 석불이 있던 금당과 천장방 구역, 원융국
사비와 동부도전을 중심으로 한 대장당 구역, 서쪽으로 봉황산 기슭 골짜
기에 위치한 암자 구역으로 된 대가람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
정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의 견해를 진지하게 들어 부석사를 복
원하고 화엄불교의 수행도량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부석사는 의상 대사가 당나라 장안으로 가 화엄종의 2대 종주인 지엄(智
儼, 602-668) 화상에게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에 이곳 태백산으로 와
서 창건한 절이다. 3년 뒤에는 경주에 명랑(明朗, ?-?) 화상의 건의로 당나
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완공되었다. 명
랑 화상은 선덕왕 1년인 632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진언밀교眞言密
敎를 공부하고 와 신라에 밀교를 전파하고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의상이 문무왕(文武王, 661-681) 16년인 676
년 2월에 왕명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간 신
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적 공격에 늘 시달리고 백성들이 수도 없이 죽
어 나가자 결국 천하통일의 마음을 먹고 무열왕(武烈王, 654-661)과 그의 아
들 문무왕에 이르러 당나라와 힘을 합쳐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렇지만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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