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P. 134
고 있는 화엄학파와의 경쟁에서는 밀려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법상종의 전개를 보면, 원측-도증-대현(大賢,
?-?)으로 이어져 미륵불과 아미타불을 모시는 대현계와 원광
(圓光, 555-638)-진표(眞表, ?-?)로 이어져 미륵불과 지장보살
을 모시는 진표계로 분화되었고, 진표계는 헌덕왕의 왕자 심
지(心地, ?-?) 화상이 이어 받아 동화사桐華寺를 중심으로 전
개되어 갔다. 고려시대에도 법상종과 화엄종이 고려불교의
사진 7. 안광석, 양대 축을 형성했을 정도이니 그 생명력은 여전했다.
‘화엄연기’.
아무튼 불교가 보다 고도의 철학체계를 갖춘 것이 되기 위
해서는 이런 법상종의 유식학과 인식방법론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나갔어
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과
학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등장하는 격물치지格
物致知를 요체로 하는 성리학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달하였을 것
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려운 철학체계이고 더구나 한자를
해득할 수 없는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고 보인
다. 더구나 종교의 힘을 빌려 큰 바람을 일으켜 통일신라를 그야말로 통일
된 하나의 왕국으로 새로 세우는 데는 화엄사상을 수용하여 한 바탕 바
람을 일으키는 것이 더 쉽고 필요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현실을 초월한 별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을 지극히 긍정하게 만들게 하
는 세계도 있었으니, 인식과 존재에 대한 어려운 논의를 전개하는 것보
다는 훨씬 받아들이기도 쉽고 재미난 것일 수 있었으리라. 역설적이게도
종교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임에도 현실과 유리되면 모두 멸하였
다. 여기에 종교의 비밀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화엄경』은 일찍이 자장 율사에 의하여 신라에 전파되었지만, 통일신라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