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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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통일이 되어도 반기를 들고 일
어나는 일이 있었고, 통일국가로 통합되는 데는 서로 다른 백성들이 하나
로 융합하고 공동체가 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당시 통
일신라의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시대적인 요청은 불교의 화엄사상과 합치
하는 것이어서 화엄학은 신라 불교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최고
지위에 의상 대사가 있었다.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 후 신라에 화엄종을 펼쳐나갔지만, 원래 원효
와 의상이 당나라로 공부하러 가려고 했을 때는 당나라에서 명성을 날리
고 있는 천재 현장(玄奘, 600-664) 법사에게 배우러 가려고 했다. 요즘도 유
학을 가고자 할 때에는 그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에게 가서 배우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기를 받아줄 다
른 교수를 찾아 가거나 아니면 자기를 받아주는 다른 교수를 찾아 아예
전공을 바꾸기도 한다. 이 당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해골물 이야기로 원
효가 당나라 유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설화일뿐 뛰어난 사람은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스스로 이치를 터득하고 새로운 경지를 열 수가
있으므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다. 천재적인 원효가 보기에 당나라로 유
학을 가지 않아도 붓다의 가르침과 불교철학의 이치는 훤하게 알 수 있는
데 굳이 당나라 유학을 갈 이유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을 것이다. 그
렇지만 의상은 당나라로 갔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현장 법사에게 배
운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별로 주목되지 않은 지엄 화상 문하로 갔다.
당시 당나라 장안에는 현장 법사가 인도의 나란다(那爛陀, Nalanda) 사
원 대학에서 계현(戒賢, 시라바드라) 법사 문하에서 불교철학의 최고봉인 17
지론, 즉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무착(無着, Asanga, 395-470경), 세친(世
親, 400-480경) 계열의 유가瑜伽, 유식唯識에 관한 공부를 마스터하고 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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