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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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현장학을 공부한 신방(神昉,
?-?), 지인(智仁, ?-?), 승현(僧賢, ?-?),
순경(順璟, ?-?) 등 신라승들이었다.
이들은 인식론, 논리학 등 치밀한 인
식체계에 대하여 논구한 대학자들이
었다. 신라승들도 현장 법사의 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가사지론』 100권이 당나라에서 인
출되자 신라 진덕여왕眞德女王은 당태
종에게 이를 보내달라는 글을 올리기
도 했다.
아무튼 신라 불교의 초기에 이런 유
식학의 발전이 중국과 비교하여 종교
성을 더 띠면서 전개되었는데, 이는
결국에 의상의 화엄사상과 경쟁·대립
하게 된다. 당나라 장안의 서명사西明
寺를 중심으로 한 원측의 유식학맥을
잇는 도증道證 화상이 효소왕 원년인
692년에 귀국하는데, 의상의 제자 승
전勝詮 화상도 효소왕대에 귀국하면
서 양쪽 학맥은 서로 팽팽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유식학파는 경덕왕대에
법상종法相宗으로 교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지만, 왕실의 강력한 후원을 받 사진 6. 안광석 서書, 시示 표훈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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