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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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화살에 꽂힌 금빛 고슴도치가 되는
                  고통의 순간만이 위로였다



                  오늘도 늑대처럼 쫓아오다 사라지는

                  공룡 배 속 같은 긴 어둠의 길
                  백미러로 힐끔 돌아보며
                  사내들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터널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 「터널을 지나며」 전문 -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터널을 화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적

             지 않게 뚫었다. “절망과 한숨의 은산철벽”을 뚫는 사이 화자는 인생의 고

             통에 익숙해졌고, 액셀러레이터 밟는 기술까지 적지 않게 익혔다. 앞으로
             도 뚫어야 할 터널은 있을 것이다. ‘인생의 여러 터널’들을 지나오던 화자는
             그 사이 마침내 김천 직지사 주지 스님이 황학루를 비뚜름하게 지은 이유

             까지 파악한다. “하필 누각 지을 자리에 못생긴 개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

             었는데 그 나무를 살리려고 그랬다 합니다. 개살구나무를 베어내자는 사
             람 여럿이었으나 주지 스님이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 비뚜름하게 지었다
             합니다”(「불사佛事」) 삶의 터널을 지나온 모든 존재는 - 그것이 생물이든 무

             생물이든 혹은 작은 존재든 큰 존재든 - 나름의 의미와 의의가 있음을 화

             자는 비로소 확철대오廓徹大悟한다.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땀 묻은 곡괭이질로 곰 굴 파듯 악착같이 팠
             기에” ‘지혜’를 증득證得할 수 있었고, “오늘도 늑대처럼 쫓아오다 사라지는

             공룡 배 속 같은 긴 어둠을 백미러로 힐끔 돌아보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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