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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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과 ‘장기기증 서약서’ 역시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문서가 아니다. 그래서 ‘진귀한 신체에서 나온 사리(유골)’
다. 「진신사리」가 가리키는 ‘달[月]’은 명백하다. ‘이치에
맞는 말[合頭語]’은 참다운 행동(수행)이 될 수 없고 ‘진실
한 문서(명단과 서약서)’는 ‘나귀 묶는 말뚝’이 결코 아니라
는 것이다.
홍 시인은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 등 3권의 시집에서 누구나 겪는 일 속에 내포
사진 4. 『터널을 지나며』.
되어 있으나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치를 소박한 말로
풀었다. 그렇다고 그저 ‘재미있고 우스운 시집’은 결코
아니다. 간명한 시 속에 지극한 이치를 담아 독자들이 스스로 달을 깨닫
도록 했다. 따라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레 삼단의 높은 파도를 뛰어 넘어
‘용’으로 변한다. 금나라(金, 1115-1234)를 대표하는 문인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이 「호화상송서暠和尙頌序」에서 “시는 수행자에게 아름다운 비
8)
단을 덧붙이는 것이며, 선은 시인에게 옥을 자르는 칼이다.” 고 지적했
듯이 3권의 시집에 사용된 진솔하고 맛깔스런 언어는 시인에겐 아름다
운 비단이고, 독자들에겐 어리석음을 잘라내는 칼이다. 아름다운 비단은
방편이고 칼은 지혜를 상징한다. 방편과 지혜가 잘 조화된 ‘시’는 ‘손가락’
이 아니고 ‘달 그 자체’다.
8) “詩爲禪客添花錦, 禪是詩家切玉刀.” 『元好問全集』(增訂本, 上), 太原: 山西古籍出版社, 2004, p.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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