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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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양루로 올라가는 계단 옆 넓은 터의 한쪽에 숙종 30년(1704)에 세운 다
          솔사 중건비가 서 있는데, 이 비에 ‘朝鮮國 慶尙右道 昆陽郡 北智異山 靈

          嶽寺 重建碑’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봉명산의 원래 이름이 영악산

          이었고, 창건 당시에 절 이름을 이 산 이름에서 따와 영악사라고 명명한 것
          이 아닌가 하는 추론도 해본다. 비문은 시와 문장으로 명성을 떨친 채팽
          윤(蔡彭胤, 1669-1731)이 지었고, 명필로 이름을 떨친 함경도관찰사 함흥부

          윤 이진휴(李震休, 1657-1710)가 이를 썼다. 전액篆額은 영의정 권대운(權大運,

          1612-1699)의 아들인 대사헌 권규(權珪, 1648-1722)가 소전小篆으로 썼다(사진
          2). 권규는 당시에 전서를 잘 쓰기로 이름이 높았다. 이진휴는 종조부인 명

          필 이지정(李志定, 1588-1650)의 후손인데, 이하진(李夏鎭, 1628-1682), 이서(李
          溆, 1662-1723), 이익(李瀷, 1681-1763) 등 이 가문의 학자들은 대대로 명필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통도사의 ‘사파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娑婆敎主
          釋迦如來靈骨舍利浮屠碑’도 이 세 사람이 똑같이 짓고, 비명과 전액을 썼다.
                                                대양루를 옆으로 돌아 돌계

                                              단을 밟아 올라가면 한 단 높

                                              은  지대에  경봉(鏡峯,  1892-
                                              1982) 대선사가 쓴 현판이 걸린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사진
                                              3). 이곳은 원래 대웅전이었는

                                              데, 1979년 응진전應眞殿에 모
                                              셔져 있던 아미타여래불상 속
                                              에서 불사리佛舍利 108과가 나

          사진 7. 동춘차.                          오자 불사리탑을 조성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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