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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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건국방략을 설파하며 건국철학을 전개하였다. 해방 전후의 지식사회에
서 김정설 선생은 건국 논의의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1950년에는 국회의
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58년에는 건국대학교에 동방사상연구소를 설립
하여 역학 등 동양사상을 강의하였는데, 황산덕(黃山德, 1917-1989) 선생, 이
항녕(李恒寧, 1915-2008) 선생, 이종익(李鍾益, 1912-1991) 선생 등 기라성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선생에게 영향을 받았다. 나중의 일이지만, 1961년 박
정희(朴正熙, 1917-1979) 장군이 거사를 한 다음 곧바로 김정설 선생을 찾아
가 국가철학과 새 국가의 방략 등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한 일도 이런 배경
을 가지고 있다.
김법린 선생은 14세에 은해사로 출가하여 기미독립운동 때에는 범어
사梵魚寺를 기반으로 하여 경남 지역 만세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상
하이로 망명하여 의용승군義勇僧軍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려고 한 계
획이 좌절되자 1921년 프랑스 파
리 대학으로 유학하여 철학 공부
와 함께 해외 독립운동을 모색하
는 활동을 하다가 1928년 귀국하
여 경성불교전문학교 교수로 활동
하였다. 귀국 후에도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고 1930년 5월 만해선생
의 지도하에 다솔사를 근거지로
하여 만당의 비밀항일운동을 전개
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마자
와駒澤 대학에서 불교를 연구함과
동시에 최범술 선생과 만당 도쿄 사진 10. 효당본가 반야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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