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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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로서 정부 후원으로 프랑스에 유학한 이후 일본에 프랑스학을 소개하
          였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번역하고 해설한 『민약역해民約譯解』를 게재하
          였다. 그로 인해 양계초는 동양의 불교와 서양철학의 만남의 중요성을 인

          지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입장은 그 자체로 중국근대 사상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후 칸트나 흄 등 서양철학과 불교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양계초 사상은 이러한 연구의 선구적
          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칸트철학과 동양 유식불교의 만남


           양계초는 칸트 철학이 기본적으로 불교, 특히 유식불교의 이론과 일치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고 보았다. “칸트 철학은 대개 불교에 가깝다. 이 논

          의는 불교 유식학의 의미와 서로를 인증한다. 불교는 일체의 이치를 궁구
          하는 데 반드시 먼저 본식本識을 근본으로 삼았다는 것이 이러한 의미이
          다.”고 하였다. 그는 칸트 철학이 유식불교와 “서로를 인증할” 정도로 가깝

          다고 보고, 그 이유가 유식불교가 본식, 즉 아뢰야식을 근본으로 삼고 있

          는 점이라고 본 것이다. 유식불교에서는 아뢰야식을 본식으로 보고, 그 속
          의 종자계로부터 현상계의 모든 것이 생성되어 나온다고 보는데, 양계초는
          이러한 구도가 칸트의 물 자체와 현상계 구도와 형태적으로 일치한다고 보

          았다. 나아가 “지혜의 작용에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아, 순수 이성과 실천 이

          성을 명확하게 ‘순수한 성질의 지혜’, ‘실행의 지혜’로 나누어 부르면서, ‘자
          기 외의 사물 하에서 고찰하는 공덕’, ‘스스로 동작하여 일체의 업業을 만
          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칸트의 세 비판서 중 가장 중

          요한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두 저서를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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