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8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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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지선智仙이 양육하였기 때문에 자주 부처님의 은혜로 황제가 되었
          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문제는 즉위 초년인 개황 원년(581)에 북주 무
          제武帝의 폐불(573-577)로 초토화된 북방의 불교회복을 위해 “출가를 원하

          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수를 헤아려 비용을 제공하고, 경전과 불상 등

          을 마련하라. 경사京師와 병주幷州, 상주相州, 락주洛州 등의 커다란 도읍에
          는 관리들로 하여금 모든 경전을 사경寫經하게 하여 사찰에 보관토록 하라.”
          고 하였으며, 또한 “천하의 사람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민간에 불경을

                                           1)
          육경六經의 수십 배가 되도록 비치하라.” 고 조서詔書를 내렸다. 또한 개황
          10년(590) 담천曇遷의 건의로 문제는 “모든 사도私度 승니僧尼들의 출가를 허
          용”한다는 조서를 내리게 되었고, 이 조서는 바로 효력을 발휘하여 『속고승
                                                                       2)
          전續高僧傳』에 따르면 사도의 승니 50여 만 명이 동시에 수계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찰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문제

          는 각 군현에 관립의 사찰들을 세웠다.           3)
           또한 문제는 개황 12년(592) 당시 제도帝都였던 장안長安에 모든 학파의
          유명한 학승을 초빙하여 열반중涅槃衆·지론중地論衆·대론중大論衆·강율

          중講律衆·선문중禪門衆의 ‘오중五衆’을 세웠다. 열반중은 『열반경』을 중심으

          로 하여 불성론을 주로 논하고, 지론중은 주로 『화엄경』을 중심으로 하며,
          대론중은 『대지도론』을 중심으로 주로 『대품반야경』을 논하고, 강율중은






          1)  『隋書』卷315, 『經籍志四』 “開皇元年, 高祖普詔天下, 任聽出家, 仍令計口出錢, 營造經像. 而京師及幷州
           相州  洛州等諸大都邑之處, 並官寫一切經, 置於寺內; 而又別寫, 藏于祕閣. 天下之人, 從風而靡, 竟相
           景慕, 民間佛經, 多於六經數十百倍.”
          2)  [唐]道宣, 『續高僧傳』卷10(大正藏50, 501c) “開皇十年勅僚庶等, 有樂出家者並聽. 時新度之僧乃有五十餘萬.”
          3)  道宣의 『釋迦方志』 卷下(大正藏51, 974c)에는 文帝의 在位 20년 동안에 “사찰의 건립이 3천 7백 9십 2개소,
           사경寫經이 46장藏 3천 8백 5십 3부部 13만 2천 86권卷, 조상造像이 10만 6천 5백 6십구驅.[立寺三千七百九十
           二所, 寫經四十六藏一十三萬二千八十六卷, 治故經三千八百五十三部, 造像十萬六千五百八十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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