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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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내용과 화엄종의 불교 이론은 전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 실천이성에 대해서도 유식불교적 해석을 시도하였는데, 특히
칸트의 본래적 자아·현상적 자아 및 불교의 진여·무명 개념을 일치시켜
이해하였다.
중체서용中體西用론 암묵적 지지
양계초는 이렇게 서양 칸트철학과 동양 유식불교의 일치점을 주장하였
지만, 궁극적으로는 칸트철학이 불교학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칸트의 논의는 정치하고 이치를 다했으며 거의 불교와 가깝다. 한
단계 부족한 것은 불설에서는 이 진아가 실로 대아이고 일체의 중생이 모
두 이 체體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분별상이 없다고 보는 데 대해, 칸트는
아직 이 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계초는 유식 불교를 활용한 칸트철학 이해를 통하여 서양 철학보다
동양 철학이 우수하다는 점을 은연중 언급함으로써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
에서는 서양보다 동양이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다. 이는 당시의 중체서용
론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칸트철학과 유식불교는 일치하는 측
면이 있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유식불교 등 동양 전통철학이 칸트철학보
다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서양보다 힘의 논리에서 밀리는 상황
에서 동양의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부추기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
도가 있었기에, 유식불교를 통한 칸트철학의 해석이 ‘올바른’ 칸트 해석인
가 하는 질문은 오히려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양계초가 칸트철학 해
석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시도하였는가 하는 점이고, 그것은 중국 근대에
서 가장 필요한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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