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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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주로 하며, 선문중은 정학定學을 위주로 하였다. 이와 함께 전국의
교화조직으로 ‘이십오중二十五衆’를 건립하는데, 전국에서 뛰어난 고승 25인
을 모셔 ‘중주衆主’로 삼았다. 이러한 ‘오중’과 ‘이십오중’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아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당대唐代에 출현한 이십여 종
파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화기구는 승관제僧官
制를 통하여 불교를 국가의 통치권 내로 흡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
이라고 하겠다.
한편 사상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가 중국을 다시 통일한 이후 남·
북으로 크게 양분된 불교의 교학을 통일할 필요성이 나타날 것이다. 실제
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문제의 아들이고 후에 양제煬帝로 즉위하게 되는 양
광(楊廣, 569-618)이 극진하게 모시는 천태 지의(智顗, 諡號 智者大師, 538-597)
에 의하여 실현된다고 하겠다. 남북조 시기에 불교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불성佛性에 대한 논의였고, 이 논의는 점차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
전개되었으며, 수대에 이르러서는 흔히 “남방에서는 세 부류, 북방에서는
일곱 부류, 뜻으로 세분하면 수많은 종류가 있었다[南三北七, 義成百家].”라고
하듯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통일제국을 위해 이
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는데, 천태 지자는 바로 당시에 유행하였던 제반
불교학설을 법화法華와 반야般若사상을 중심으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통
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수대에 길장吉藏의 삼론학三論學도 상당히
유행하여 후기 조사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와 관련한 논술은
뒤로 미루기로 하겠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문제와 양제가 모두 극진하게
귀의한 지자 대사의 천태학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국 선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이 출현하
였으니, 그가 바로 도신(道信, 580-651) 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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