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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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물의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사물의 본질은 불변의 것”이라고 하였
는데, 이 불변의 것이 바로 칸트의 물
자체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그
대로 적용되어 ‘현상의 나’라는 경험적
자아와 자아 자체인 ‘본질의 나’가 구분
된다. 이것이 양계초가 본 칸트의 ‘고등
의 생명’이자 ‘본질’이고, ‘참 나[眞我]’이
다. 바로 이 점에서 양계초는 칸트의
이성 주체를 불교의 ‘진아’ 이론과 연관 사진 1. 양계초.
시킬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가 칸트가 말한 진아로서, 자유의 성질이 있다. ‘무
명’이라고 하는 것은 칸트가 말한 현상의 나로서, 불가피한 이치의 속박을
받으며 자유성이 없다. 불교에서는 내가 무시 이래 진여와 무명 두 가지가
성해性海의 장식 중에 합하여 있으면서 서로 훈습한다고 보았다. 범부는 무
명으로 진여를 훈습하므로, 미혹한 지혜가 식이 된다. 도를 배운 사람은
진여로서 무명을 훈습하므로, 전식성지轉識成智한다.” 양계초는 불교의 진
여·무명 개념으로 칸트의 본래적 자아와 현상적 자아를 대비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중세 이래 신의 관념을 부정하고 실제적인 신
의 역할을 인간 내면의 이성에 맡긴 칸트 철학과 애초에 초월적 신 개념 없
이 인간 내면에서 구원의 힘을 보는 불교의 유사성에 근거를 둔 것이다. 특
히 그가 『대승기신론』의 전통불교 방식보다 분석적, 과학적인 이성의 방법
을 중시하는 유식학이 중세의 가톨릭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이성의 힘을
강조한 칸트 철학에 가깝다고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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