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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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의 스승이고, 암흑시대의 구세주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칸트에 대한 이와
같은 높은 평가는 칸트 시대의 상황이 양계초가 살았던 중국 근대의 상황
과 유사하다고 보고, 당시 칸트의 학문적 작업이 양계초 자신이 살았던 시
기에도 꼭 필요하다고 본 것과 관련된다.
이 때 양계초가 보는 칸트 철학은 불교, 특히 유식학과 일치한다는 특
징을 가진다. 근대 중국은 유식학의 유행이 시대적 대세였고, 양계초 역시
이와 동일한 흐름에 함께 한 것이었다. 그는 칸트 철학이 유식학과 “서로를
인증할” 정도로 가깝다고 보고, 그 이유로 유식학이 아뢰야식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유식학에서 아라야식을 본식으로 보고 그 속
의 종자계로부터 현상계의 모든 것이 생성되어 나온다고 보는 구도가 서양
철학자 칸트의 물 자체와 현상계 구도라는 형태와 일치한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 나아가 “지혜의 작용에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아, 순수 이성과 실천 이
성을 명확하게 ‘순수한 성질의 지혜’, ‘실행의 지혜’로 나누어 부르면서, ‘자
기 외의 사물 하에서 고찰하는 공덕’, ‘스스로 동작하여 일체의 업業을 만
들어 내는 것’이라고 불교 용어를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유식학으로 칸트 실천이성 해석
실천이성에 대한 양계초의 유식학적 해석은 특히 독창적이다. 이런 의미
에서 양계초가 단순한 사회사상가가 아니라 불교사상가임을 엿볼 수 있
다. 양계초는 칸트의 본래적 자아·현상적 자아와 불교의 진여·무명를 연
관시켜 해석하였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는 현상들만을 접하게 되지만,
이성을 통해서는 궁극의 존재론적 실재, 즉 개개의 현상을 낳고 현상의
기체를 이루고 있는 실재하는 ‘물 자체(본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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