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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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궁극적으로는 칸트 철학이 불교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
다. “칸트의 논의는 거의 불교와 가깝다. 한 단계 부족한 것은 불설에서는
이 진아가 실로 대아이고 일체의 중생이 모두 이 체體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분별상이 없다고 보는 데 대해, 칸트는 아직 이 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계초는 유식학을 활용한 칸트 철학 이해를 통하여 서양
철학보다 동양 철학이 우수하다는 점을 은연중 언급함으로써 적어도 정신
적인 측면에서는 서양보다 동양이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다.
한마디로 양계초는 전통사상에서 계승해야 할 부분이 불교라고 본 것이
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비유를 들며 그는 서양
이라는 호랑이의 공격을 받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정신이 바로 불교이다. 전통 철학의 대표주자인 주자학은 우주론과 심
성론을 하나의 통일체적인 체계로 파악한다. 그런데 서양 과학의 도입으로
중국전통의 우주론이 깨져버린 당시 상황에서는, 우주론과 심성론을 하나
로 보는 주자학이 설득력을 지닐 수 없었다. 따라서 양계초는 과학적 우주
론이 없고 심성론 위주로 된 철학인 불교를 전통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
고 동양의 가치를 구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서양 자본주의의 침입에 대항
하기 위해서는 불교적 가치를 더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과 가치를 구
분하고 사실의 영역은 서양의 우위를 인정하지만, 가치의 영역에서는 중국
의 우위를 견지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양계초의 의도였을 것이다. 따
라서 사실과 가치의 구분, 과학의 영역과 정신의 영역의 구분은 양계초 사
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였고, 칸트 철학을 통해 양계초는 이러한 구분
에 타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동양
의 우월성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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